우리가 이 땅에 오기 전에 부모님은 먼저 오셔서 가정을 꾸려놓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먼저 온 형도 누나도 있었고 내 뒤를 이어 여동생 남동생이 줄줄이
따라왔다.
부모형제를 만나고,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고……
그리고 장성하여 한 여인을 만나 좋아서 결혼했다.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아무런 준비 없이 두 남매를 이 땅에 초청했다.
초청자는 회사일로 중동에서 10년 이상을 떨어져 살았고 긴 세월을
아이들은 아버지와의 추억도 없이 성장했으니 자녀와의 원만한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는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여 아직 임시번호판을 달고 다닐 때 였는데
군에서 막 제대한 둘째 아이가 차를 좀 쓰겠다고 했다.
내키지는 않은 채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고 키를 넘겨는 주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다.
이유는 새 차라는 것, 비가 많이 오고 있는 것과 젊은 혈기에 함부로
운전하는 습관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처럼 제대하고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는데 기분좋게 해줘야지
싶어서 억지로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결국 아들은 교통사고를 내었고, 걱정이 되어 내가 잠들었는지를 확인
하기위해 두번씩이나 전화했다.
“아빠! 사실은 차가 좀 스쳤거든…..”
“많이 스쳤어?” 난 황급히 물었다.
“아니 조금…..”
“괜찮다. 걱정하지 말고 어서 들어와라.”
말로는 위로를 했지만 차 상태가 어떤지 매우 궁금했다.
아들이 빨리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밤 12시 30분이 지나서 아들이 제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몹시 화가 치밀었다.
조수석의 창문은 박살이 나고 앞뒷문은 종이조각처럼 찌그러졌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고 방으로 올라왔다.
옛날 방법으로 혼을 내며 야단을 칠 것인가, 아니면 7Habit을 가르친
대로 감정계좌예입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며 말없이
내 서재로 들어갔다.
그때 불현듯 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네가 언제 한번이라도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여준 일이 있느냐?”라는
자문이었다.
그렇다. 떳떳한 기억은 없고 상처를 준 기억은 금방 떠오른다.
감정계좌에 예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동안
또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아들과 꽤나 편한 관계, 마음으로부터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를 알게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왜 아들은 처음 전화했을 때 사고이야기는 하지 않고 내가 잠자리에
들었는가만 확인했을까?
아들의 마음은 저만큼 멀리 있는데 나 혼자만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아버지 노릇을 잘 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결국 그것이 아니
었다는 말인가?
갑자기 외롭고 슬픈 생각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유산을 생각하면서 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차가 저지경이 되고 나서 얼마나 걱정되고 또 놀랐니?
나도 차를 보는 순간 황당하고 화가 많이 났었단다.
그러나 네가 다치지 않았다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니?
괜찮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이번 실수를 통하여 앞으로 운전하는데 큰 교훈이 될 것으로
아빠는 믿는단다. 편한 마음으로 잘 자거라.
너를 사랑하는 아빠가.”
편지를 아들 방에 남기고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들은 조심스레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아빠! 고마워요.
간밤에 아빠가 남기신 편지를 읽고 한잠도 못잤어요.
야단치는 아빠로만 생각하고 또 난리가 날줄 알았는데 아빠한테도
이런 너그러움과 사랑이 있는 줄 몰랐어요.
아빠! 언젠가 저도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제 아들이 차 사고를 내고
들어오면 아빠처럼 저도 화내지 않을 거예요.
꼭 아버지 같이 할거예요.”
아들은 계면쩍은 모습을 보이며 제 방으로 부지런히 가버린다.
모처럼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인 듯하여 흐뭇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많은 세월을 살아가야 할 자녀들이 평상시에는
모르고 지내다가도 그들의 인생에 폭풍우를 만났을 때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들의 등대가 되어 갈 길을 밝혀줄 수 있다
면 이 땅에서 바른 아버지로 살아가는 보람과 긍지를 느끼지 않을까?
언젠가 그날이 오면, 나는 사랑하는 두 자녀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이
되고 싶은가를 곰곰 생각했다.
그 생각이 분명히 각인되어 있는 한, 매 순간마다의 행동은 후회없는
선택이 되도록 나를 통제하고 관리하게 되리라 믿으면서....
자녀들로부터 존경 받기를 소망하는 이 땅에 많은 아버지들이여!
자녀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시기를 원하시는지요?
끝을 생각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이 되시길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