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코뚜레와 부리망

티가세 2006. 10. 7. 10:01
코뚜레와 부리망

                             
                                             







어린시절 방학때면 시골의 친척 할아버지댁에서 지내곤 했습니다.
지금도 버스가 하루에 세번정도 들어올 정도로 외진 곳이었죠.
어느날인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가시고 집에 혼자 있는데
송아지가 마당을 이리저리 뛰놀더니 갑자기 방문앞으로 와
날 빤히 쳐다보는데 얼마나 놀랬던지...
할아버지 할머니 계실 땐 만지기도 하고 같이 뛰놀며 놀기도 했는데
혼자있는데 오니까 버럭 겁이 났던 모양입니다.
방문을 걸어잠글 엄두도 못내고 구석으로 들어가 웅크리고앉아
그저 송아지가 멀리 가주기만 바랬죠.
사실 어린시절엔 눈이 커다고해서 '송아지눈'(커서는 간혹 낙타눈)'
이란 소리를 종종 듣던 터라 송아지에 대해서는
남다른 친근감도 있었는데도..

재산목록 1호 '소'
아이 한 명에 소 두 마리가 필요했던 지난시절의 농가에서는 송아지가 들어오는 날은
또 한 식구가 늘어나는 것처럼 기쁜 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농기계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집에 소가 있다는 것은 '반농사'를 짓는거나
다름없었던터라 소를 장만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습니다.
이웃집의 새끼소를 가져다 잘 키워 어미소가 되고 그 어미소가 다시 새끼를 낳으면
어미소를 주인에게 주고 새끼소를 갖는 '소배내기'풍습이 등장한 것도 이때문이었죠.
혹여 소가 병이라도 들게되면 한 철 농사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 식구이자 재산목록 1호인 소에 대한 농부의 걱정과 애정은 남다릅니다.
비록 농부는 사람이고 소는 축생이지만 일을 할때면 둘은 혼연(渾然)이 됩니다.
쟁기질을 하다 돌이라도 나오면 소는 알아서 돌아가고 농부는 미리 쟁기를 들어
소의 헛고생을 덜어주고 소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히면서 힘들어할 것 같으면
소의 마음이 되어 충분히 쉬어줍니다.

코뚜레와 부리망
소는 워낙 크고 힘이 세기때문에 목걸이 정도로는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코뚜레입니다.
송아지가 어느정도 커면 노가주나무가지나 향나무가지를 잘라 코뚜레를 만듭니다.
살이 민감한 코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코뚜레를 집어넣어 어릴때부터 길을 들입니다.




너무 자라기 전에 해주어야 소도 사람도 덜 힘듭니다.
그런가하면 새순이 올라오고하면 소들이 먹을 것을
찾느라 한눈을 팔지못하도록 그물처럼 생긴 '부리망'을
입에 덧씌웁니다.
코에는 '코뚜레' 입에는 '부리망'...
평생을 주인과 함께 농사일에 바치는 소들은
굳이 코뚜레를 당기지 않아도 부리망을 씌우지 않아도
주인 말을 다 알아들을 것 같아 코뚜레와 부리망을
볼 때마다 나는 애틋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소들이 그렇게 사람 말을 잘듣는 것은 소 자체의 성품이 온순하기도 하지만
생살을 뚫고 있는 쇠코뚜레가 주는 고통때문이 아닌가하는...

부모님의 꼬뚜레와 부리망
같이 잘뛰어놀던 송아지가 어느날 코뚜레를 하고 불편해하면서 눈을 껌뻑이며
근 일주일정도를 음메~하며 울음소리를 낼 때면 어린마음에 얼마나 안쓰럽던지요.
그런데...소들은 코뚜레를 빼낼 때도 운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농가에서는 자식들이 커서 상급학교에 갈 때가 되든가하면 가장 늙은 소의
코뚜레를 잘라 코에서 빼냅니다.
신기한 것은 코뚜레를 푼 소는 송아지적 처음 코뚜레를 뚫었을 때처럼
울음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며칠후 집앞에 도착한 낯선 트럭에 실려 사라집니다.
이처럼 소에게 있어 구속이자 자유이며 삶이자 죽음이기도 한 코뚜레...
어쩌면 우리 자식들은 부모님의 꼬뚜레이자 부리망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하고 싶은 일 제대로 못하고 할말 제대로 못하고
맛있는 것 제대로 못드신 부모님들께는 우리들이 코뚜레이자 부리망이 아닌가하는... 
자식된 여러분들!
명절때마다 보란듯이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또 마음뿐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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